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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 On a Mild Spring Night. spring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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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거.닐.다./+ / 2009. 11. 1. 12:48


답지 않게 은근히 여성스러운 구석이 있는 그녀는 뜨개질을 즐긴다.

이렇게 날이 쌀쌀해지고, 낙엽 밟는 소리가 즐거워지면 포근한 뜨개질이 생각난다.

읽지도 못하는 일본서적이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지는 뜨개 관련 책들.

공기가 차가워지니 괜히 한 권씩 꺼내어 뒤적여본다.

아아, 예쁘다. 뜨고 싶다. 뜨개 옷들은 사기엔 괜히 아깝고 뜨자니 실값이며, 시간이며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결국 꿈틀대는 뜨개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 언젠가 욕심에 잔뜩 사두었다가 그녀의 엄마에게 뺏기고 남은 털실뭉치들을 주섬주섬 꺼낸다.

특별히 아꼈던 베이지색 램스울 실을 한 뭉치 풀어낸다. 실뭉치 속에 콕 박혀있던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찾아본다.

손끝에 걸리는 느낌. 왠지 이 실가닥을 당기면 끝이 나올 것 같아.

빙고!

꿈틀꿈틀 거리는 실 끝을 잡고 씨익 웃음짓는다. 어디다 두었더라? 코바늘도 많은 실과 함께 그녀의 엄마에게 빼앗겨 버렸구나. 남은 싸구려 코바늘에 실을 건다.

한 코 한 코 실이 걸리고 엮이는 모습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익숙할수록 낯설고 신기하다.

그리고 똑같은 실 걸림이 이어지지만 하나의 목도리가 완성이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인간사를 비춰본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듯 똑같은 실걸림, 똑같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완성되어 가는 삶.

괜한 상념에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본다. 어이쿠! 여긴 5코인데 6코를 떴구나. 어쩐지 콧수가 맞지 않더라니, 모양이 조금 어색하더라니.
그래도 능숙한 솜씨로 그 다음 단에서 콧수를 바로 잡는다. 전체적 모양이 중요하지, 한군데,요정도 실수쯤은 괜찮아. 하며 자위한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손등 힘줄이 당겨오고 허리가 욱씬거리자 고개를 들고 밖을 본다.
오늘은 이쯤만 할까? 이정도 속도면 내일이나 모레쯤 완성하겠구나.








눈이 큰 그녀에게 줄까?

그녀는 아무래도 이 목도리보단 미니 케이프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이걸 뜨고 나면 미니케이프를 하나 떠야겠다. 



그녀는 뜨개실과 바늘을 정리하고 따뜻한 차를 한 잔 태우기 위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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